화산재 아래 잠든 두 도시

흔히 박물관에 걸린 그림 한 점을 감상할 때, 우리는 멀리서 전체 구도를 바라보며 감탄한다. 하지만 가까이 다가가 붓질 하나하나를 살펴보면, 멀리서는 보이지 않던 디테일과 의도가 또렷이 드러난다. 이탈리아 남부 여행에서 만나는 고대 도시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도 마치 그와 같다. 두 유적지를 모두 찾는 여행자라면 흔히 ‘하루에 두 곳을 보면 충분하지 않을까’라고 생각하기 쉽다. 지도상 거리도 가깝고, 같은 화산재에 묻힌 도시라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막상 두 곳을 비교하며 관찰해 보면, 시간이 멈춘 방식이 너무나 달라서 각각의 도시가 완전히 다른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글은 흔히 ‘고대 로마 도시 유적’이라는 하나의 큰 틀로 묶어 버리는 두 공간을, 보존 상태와 생활용품의 차이라는 렌즈를 통해 비교하며 살펴보고자 한다.

많은 여행자가 계획을 세울 때, 오전에 폼페이를 둘러보고 오후에 헤르쿨라네움을 잠깐 견학하는 일정을 짠다. 이른바 ‘유적지 투어’에 초점을 맞춘 방식이다. 아쉽게도 이런 계획은 두 도시가 가진 가장 중요한 차이를 놓치기 쉽다. 폼페이에 도착해 넓은 포럼과 원형 극장, 그리고 화려한 벽화가 남은 귀족 저택을 둘러보는 것만으로도 감동적이지만, 헤르쿨라네움을 찾는 순간 그 감동은 다른 층위로 옮겨 간다. 유적의 규모와 웅장함을 비교하는 여행에서는 폼페이가 압도적으로 크고 화려해 보인다. 하지만 두 곳을 연달아 방문한 뒤 기억에 남는 장면을 떠올려 보면, 폼페이의 넓은 광장보다 헤르쿨라네움의 좁은 골목길과 그 안에 남아 있는 나무 침대, 그리고 목재 선반 위에 놓인 항아리들이 더 또렷하게 떠오르곤 한다.

이 차이가 발생한 결정적인 이유는 화산 분출 당시 두 도시가 받은 영향이 달랐기 때문이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산이 폭발했을 때, 폼페이는 수 미터 두께의 화산재와 경석이 하늘에서 쏟아져 내려 건물의 지붕을 덮쳤고, 이내 무너진 지붕과 함께 도시 전체가 무거운 재층 아래에 파묻혔다. 반면 헤르쿨라네움은 조금 다른 운명을 맞았다. 이 도시는 폭발 초기 단계의 화산쇄설류, 즉 뜨거운 가스와 화산 물질이 섞인 고밀도의 흐름에 휩쓸렸는데, 이 흐름이 건물 사이의 빈틈을 순간적으로 메우며 재료를 급속히 굳혔다. 덕분에 헤르쿨라네움은 폼페이처럼 건물이 무너져 내리는 대신, 내부 공간이 그대로 밀봉된 상태로 보존될 수 있었다.

이상하게 들릴 수 있지만, 헤르쿨라네움은 재난의 순간이 오히려 더 깊은 시간의 캡슐을 만들어 냈다. 헤르쿨라네움의 발굴 현장을 살펴보면, 2층 목조 구조물이 무너지지 않은 채 남아 있는 경우를 발견할 수 있다. 좁은 주택의 내부로 들어가 보면, 나무로 만든 침대 프레임과 옷장, 그리고 문짝까지도 원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폼페이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려운 2층 건물의 잔해나 목재 가구가 헤르쿨라네움에서는 놀라울 정도로 선명하게 보존된 것이다. 이러한 차이는 방문객으로 하여금 고대 로마인들의 삶을 얼마나 생생하게 느낄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가장 흥미로운 지점은 두 도시의 발굴 유물에서 드러나는 주거 문화의 대비다. 폼페이의 대저택은 넓은 아트리움을 중심으로 기둥이 늘어선 정원과 벽화로 장식된 방들이 배치된, 권력을 과시하는 공간이었다. 그 벽화에는 신화 속 인물과 원근법이 적용된 건축물이 그려져 있어 귀족들의 문화적 취향을 보여 준다. 반면 헤르쿨라네움은 당시 상대적으로 부유한 휴양 도시이면서도, 폼페이만큼 거대한 공공 건축물보다는 정교한 개인 주택이 더 많이 발굴되었다. 이곳에서 나온 생활용품은 인간의 손길이 더 짙게 묻어 있다. 밀랍으로 만든 서판, 목재 가구의 장식 조각, 더 정교하게 제작된 금속 주방용품, 그리고 미용 도구까지. 이 유물들은 단순히 귀족의 사치품이 아니라, 일상을 꼼꼼하게 꾸려 나간 중산층의 삶을 보여 주는 것이다.

이 차이는 관람 방식을 완전히 다르게 만든다. 폼페이를 걷다 보면, 우리는 거대한 돌바퀴가 지나간 흔적이 있는 포장도로와 공공 목욕탕, 그리고 선거 벽보가 남아 있는 벽면을 보며 도시 전체의 정치적·사회적 역동성을 대략적으로 파악하게 된다. 마치 오늘날의 대도시 중심가를 걷는 기분이다. 한편 헤르쿨라네움을 방문할 때는 시야를 낮추어 안쪽으로 향하게 된다. 작은 판자집처럼 보이는 서민 주택의 좁은 부엌을 들여다보며, 화덕 옆에 놓인 청동 냄비와 주전자의 용도를 상상해 보는 식이다. 이렇게 두 유적을 비교하며 보면, 고대 로마 남부 지역의 문화가 단일한 층위가 아니라 귀족의 과시적 소비와 서민의 실용적 생활이라는 다층적인 구조로 이루어져 있었음을 자연스럽게 깨닫게 된다.

그렇다면 이탈리아 남부 여행에서 이 두 유적지를 제대로 비교하며 감상하려면 어떤 태도가 필요할까. 첫째, 폼페이의 넓은 부지에서 모든 곳을 다 보려고 욕심내기보다는, 핵심 지역인 포럼과 극장, 그리고 대표 저택 두 곳을 골라 깊이 들여다보는 것이 좋다. 폼페이 전체를 완주하려는 마음은 오히려 다리만 피곤하게 만들 뿐, 유물 하나하나에 집중하는 시간을 앗아 간다. 둘째, 헤르쿨라네움은 입장 순간부터 비교적 작은 규모의 공간이라는 점을 감안해, 골목과 주택 실내를 탐색하는 데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한다. 유적지 곳곳에 남아 있는 나무와 천과 같은 유기물은 폼페이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밀도로 당시의 일상을 응축하고 있다.

또한 두 유적지를 비교하는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면, 같은 날 두 곳을 모두 돌기보다는 이틀로 나누어 충분한 휴식 시간을 두는 편이 낫다. 두 유적은 도보 거리로는 가깝지만, 오전에 폼페이의 거대한 규모에 압도당한 상태에서 오후에 헤르쿨라네움을 방문하면 정신적으로도 체력적으로도 지치기 쉽다. 하루를 통째로 할애할 수 없다면, 폼페이를 오전에 넉넉히 둘러본 뒤 헤르쿨라네움은 이른 오후에 찾아, 이 도시가 산과 바다 사이에 자리 잡은 지형적 특성을 먼저 음미하면서 천천히 들어가는 것이 좋다. 이렇게 일정을 구성하면 두 도시의 발굴 상태 차이가 단순한 운명의 차이가 아니라, 화산 폭발의 힘과 그에 대한 도시의 반응 방식이 만들어 낸 필연적 결과라는 점을 더 선명하게 느낄 수 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 두 유적지에서 기억에 남는 장면이 무엇인지 되뇌어 보면, 시대를 초월한 삶의 보편적인 모습이 떠오른다. 폼페이에서 보았던 화려한 정원 끝에 서 있던 조각상들보다, 헤르쿨라네움 골목에서 만난 어느 주택의 돌로 만든 빵 굽는 화덕과 주방 선반이 더 오래 마음에 남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거대한 역사의 흐름 속에서 인간의 삶은 기념비적인 건축물로 남는 경우도 있지만, 우리가 가장 오래 기억하게 되는 것은 결국 사소하고 소소한 일상의 흔적이기 때문이다. 이탈리아 남부 여행을 준비하는 사람이라면, 두 고대 도시를 단순한 유적지로 나열하지 말고, 서로 다른 보존 상태가 만들어 내는 독특한 문화 대비를 관찰하는 눈으로 접근해 보길 권한다. 그때 비로소 화산재 아래 잠든 두 거대한 도시는 과거의 유물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계속 살아 숨 쉬는 역사의 교과서가 되어 줄 것이다.